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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및 도시계획 용어 모음

도시계획의 정의 및 역사, 한국 도시계획의 변천사

by 'Hwa bro'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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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이란 무엇인가?

 

도시계획이란 ‘도시 내 사람들의 주거 및 각종 활동과 관련하여 공간의 배치 및 제도 및 규칙을 세우는 일’이다.  도시계획이란 용어는 너무나 광범위하여 어떠한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고 개념화하느냐에 따라 종이 한 장 또는 한 단락으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논문의 형태를 가진 포괄적인 연구도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계획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에서 종사하는 1인으로서 관성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다소 원론적인 내용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도시계획이란 도시계획의 합성어이다. 도시는 촌락과 더불어 인간의 2대 거주 형태이며, 사회경제정치적 활동의 중심지이다. 사회학 및 문화인류학에서는 도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농산어촌의 지역사회를 총칭하여 촌락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다음으로 계획이란 사전적의미로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함. 또는 그 내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도시+계획 = 사회경제정치적 활동의 중심지인 도시를 형성하기 위한 절차, 방법, 규모를 미리 헤아리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계획의 역사

'르 꼬르뷔제' 빛나는 도시 모형

 

  근대 도시계획제도의 태동은 1848년대 영국의 공중위생법제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중위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환경도 개개인 가정집의 위생관리처럼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공중위생법은 위생의 내용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위생적 생활환경과, 무분별한 토지이용, 위생시설의 미비, 공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표적으로 도로 가로폭, 건축물 높이 규제, 건축선 위치 지정 등과 같은 현대에 적용되고 있는 도시계획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 환경 오염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단지와 주거단지를 분리하여 개발하였다.

  이 시기 사람들은 도시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지이용 및 도시기초시설, 건축계획 등에 관하여 균형과 질서를 인식하여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약 175년 전 영국에서부터 공동체의 생활환경 보호를 위하여 토지이용규제와 도로 가로폭 설치 기준, 기반시설의 설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도시계획이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세계 도시계획을 선도한 이는 프랑스 출신의 르 꼬르뷔제이다. 그는 근현대 건축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인물로 빛나는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르 꼬르뷔제에 대해서는 본 포스팅 이후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한국의 도시계획 변천사

 

 한국의 도시계획은 1910년 국권피탈 이후 일제가 식민지수탈정책의 일환으로 개발정책을 실시한 것을 시초로 몇 단계로 나누어 발전하여 왔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은 중세의 성곽도시의 특징을 지녔던 폐쇄적 도시였던 것을, 일제가 1934'조선시가지계획령'을 공포(公布)하고부터 도로, 철도, 광장, 상하수도 등을 시설하고, 주거지구·상업지구 등을 구분하는 현대적 의미의 토지이용계획을 도입하였다. 8·15광복과 6·25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의 도시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해외동포들의 귀국, 전쟁피난민들의 대도시정착, 농촌인구의 향도성(向都性) 등으로 인해 한때 무계획적인 도시확산을 거듭해 왔다..

 1950년대 초 정부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 후 파괴된 수도의 재건을 위해 서울도시계획을 수립한 바 있었으나, 인식부족과 재정적인 뒷받침이 부족하여 큰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도시는 불량무허가주택·판자촌·실업자(失業者) 등의 많은 문제를 안은 채 1961년 5·165·16 군사정변을 맞았다. 1960년대는 도시계획의 큰 전환기가 되었는데, 도시계획의 모법(母法)이 되는 도시계획법이 19621231일에 공포된 것을 비롯하여, 국토종합계획법(1963.12)·토지구획사업법(1966.8.3)·하수도법(1966.8.3)·도시재개발법(1976.12.31)·주차장법(1979.4.17) 등이 계속 제정되어 제도적인 정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적 정비와 병행하여, 도시들은 경제성장의 필연적인 현상으로 대도시의 확장이 계속 이루어져 서울·부산·대구 등 상주인구 100만 명을 넘는 대도시가 생겼는가 하면, 이들 도시와 소도시 간의 지역적 격차, 이농향도성의 심화, 대도시의 교통난, 주택·공원·교육시설·상하수도 및 위락시설의 부족 등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1979년을 기점으로 하여 도시의 계획적이고도 의도적 성장의 필요를 느껴, 전국 40개 도시(법적으로 인구 5만 이상)가 장기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여 2년간의 검토와 조정과정을 거쳐 근대의 도시계획이 수립되게 되었다. 경제개발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그동안 울산·안산·창원 등 신공업도시를 계획·개발하였고, 이곳에 각종 공업단지를 조성하여 새로운 개념의 토지이용계획·도시설계·단지계획·공동구시설(共同溝施設) 등을 적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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